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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냥 드는 생각

by 사회가 부도 2025. 4. 2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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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교회에 진지하게 다닐 마음이 1도 없었다.

청소년 때는 친구가 교회 다니는 게 재밌어 보여서, 이후에는 교회에 다니는 이성을 어떻게든 꼬셔 보려고 가끔 교회에 갔다. 몇 년 전에는 래퍼 지구인을 닮은 어떤 교역자가 번듯한 이성과 교제하는 걸 보고 '나도 (교회 다니면 연애)할 수 있겠는데?'는 못된 생각이 잠깐 들었다.

무엇보다 타향에서 겪는 고립과 재고립의 반복, 이 지긋지긋한 관성을 깨고 싶었다.

고립 청년에게 필요한 빌어먹을 소속감, 그게 내 관성을 깨는 데 매우 필요했다. 한 큐에 소속감을 찾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 교회에 나갔다. 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빻았지만 어쨌든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곳이니까. 주변에 안 빻은(?) 기독교인들이 은근히 있는 것도 한몫을 했다. 성당도 후보에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톨릭은 절차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최근 장애인 탈시설 문제에 천주교가 탄압을 하고 있는 걸 보고 개신교가 낫다는 생각에 힘이 실렸다.) 극우 성향의 교회가 아닌 곳을 찾은 끝에 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 교회가 딱히 진보적이어서 간 건 아니었다. 다만 그곳의 교풍을 세운 목사님의 설교가 나름대로 꽤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설득력이 내게 예수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집에서 꽤 가까운 그 교회를 다니던 중 우연히 나는 신앙의 신비를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내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지금을 살고 있구나' 하는 감각이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고립 청년이자 소외계층인 내게 베푼 선의들이 어느 순간 몰아치듯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예수가 전하고자 하는 사랑이 어떤 건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건 바로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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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앙은 12월 21일 남태령에서 확실해졌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핫팩과 먹을 것 등을 나누어주고, 전농 유튜브 라이브를 본 이들이 배달음식을 나눠주었을 때 어찌나 마음이 따뜻했는지 모른다. 덜덜 떨면서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람들 덕에 그 추운 동짓날에 우리는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차벽 안에서 피어난 사랑은 차벽 밖으로 더 큰 사랑을 불러왔다. 위험한 공권력을 상대로 하루를 꼬박 지새운 사람들은 그날 오후 4시 경에 차벽을 열었다.

 

트랙터가 남태령을 넘었을 때 나는 펑펑 울었다. 농민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여자라고, 페미니스트라고, 성소수자라고, 이주민 2세라고 공동체에서 배척받고 나중으로 밀려났던 이들이 사랑을 나누며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우리가 사랑의 힘으로 끝내 승리하였다고, 남태령의 아스팔트 바닥에서 예수도 우리와 함께 핫팩과 음식을 나누며 경찰 차벽을 뺐을 거라고.

때문에 나는 광장에서 경험한 사랑과 예수를 공동체에 간증하기 시작했지만 그 교회는 내 간증에 별 관심이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공동체에서 점차 소외되어 갔다. 그 교회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커질 무렵,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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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은 내게 윤석열의 비상계엄처럼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그 사건을 경유하며 나는 이 공동체의 민낯을, 예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꽃밭이 얼마나 소수자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는지를 깨닫게 했다. 그 교회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었고, 때문에 사랑을 한 톨도 느낄 수 없었다. 그 교회가 전하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었다. 남태령에서 깊은 사랑을 경험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내 동지들을 사랑 없이 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후 광장에서 윤석열 파면 투쟁을 하면서 자연스레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나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 교회를, 그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온라인으로도 예배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었다. 담임목사와 면담을 해서 교적을 정리하려 했으나, 몰아치는 피로 때문에 누워 있기 바빴다. 어느 날 기운을 차렸을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교적을 정리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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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사건을 겪고 나서 사랑을 모르던 예전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내가 아는 예수쟁이들이 모두 구라핑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사랑을 교회에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란 종교를 가질 이유가 없다고 느꼈으니까. (타블로, 당신이 무신론자가 된 이유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내게 사랑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 때문에. 남태령과 그 후 펼쳐진 수많은 광장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윤석열을 파면시켜온 사람들, 동지들을 위해 내 일처럼 농성장에 나아가는 말벌동지들을 보았기 때문에. 그 순간 나는 내가 경험한 사랑을 다시 나누겠노라고 다짐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현대식으로 풀어보자면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가 될까? 그 어떤 찬송가보다 <다시 만난 세계>의 메시지가 더 종교적으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신앙을 깨달았을 때는 한동안 <다시 만난 세계>를 들었다. 오롯이 사랑을 느낄 수 있게, 일상과 광장에서 내가 받은 사랑을 잘 내어줄 수 있게 위해 요즘은 출석할 교회를 찾고 있다. 부디, 새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지 않기를. 변치 않은 사랑으로 상처입은 이들의 마음까지 지켜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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