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긴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업인 사람이지만,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장문을 쓰는 건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망하는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방관하고 있는 게 씅에 안 차고 땁따비해서 적는다.
나도 내란 수괴 윤석열을 물리치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용사 힘멜이 고향에 돌아가 일을 구하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다 70대에 자연사한 것처럼. 하지만 아직 누군가는 고공에 있고, 누군가는 일하다 죽고 있다. 산업안전 교육대로 노동자의 작업 환경이 돌아가지 않는다. 여전히 사람들은 노동을 하면서 병을 얻고 제 명에 죽지 못한다. 한국의 편리한 인프라는 누군가의 피 땀 눈물을 밟고 있으니까... 광장을 경유한 사람들 중 이를 외면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도 그 중 하나다.
윤석열 탄핵 광장, 그중 남태령에서 벌어진 이틀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남태령>은 남태령을 마냥 신화화하지 않는다. '희망은 힘이 세다'는 고 김근태의 정신이 느껴지면서도 남태령 이후에도 이어진 투쟁들(대구 성서공단지회 등)과 이 투쟁에 연대하는 시민들을 찾아 그 현장을 담는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다큐임에도 대구와 진주에서 투쟁하는 연대 동지들의 모습을 담아낸 건 김현지 감독이 경남 MBC 프로듀서이기 때문이겠지. 지역에서도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각자의 투쟁을 하고 있다. 김현지 감독은 그런 저널리스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리를 관찰해 그 안에서 시대를 발견하고 화두를 던지는 사람.

근데 그런 감독이 갓 떠오르는 여돌을 묻으려 한다고? 애초에 그런 성정의 사람이었다면 경남이 아닌 서울 상암에서 <PD 수첩> 만들고 있겠지. <PD 수첩>은 누군가의 부정을 고발하는 데 특화된 프로그램이니까.
하지만 그는 <PD 수첩>에서 악인을 쫓는 대신, 지역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을 택했다. 어른 없는 시대에 참된 어른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어 <어른 김장하>를 연출한 사람이 누군가를 저격하고 묻으려 한다는 게 말이라고 함? 극장에서 김현지 감독의 장편을 모두 본 사람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다큐 제작자는 영상으로 말한다. 나는 영상과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바람에 영상에 담긴 감독의 의도를 읽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김현지의 언어와 시선은 누군가를 죽이는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사람들 관심 밖에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낸다. 이건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사람의 언어다. 반면 누군가를 죽이는 언어를 쓰는 쪽은 리센느의 팬들이다. '묻으려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겠지?' 라며.

문제(?)의 원문을 보자.
화자의 감정은 '무척무척 속상했음'이다. 그 아이돌이 일베라거나 거제 출신이란 얘기도 없다. 단서는 '여성'이라는 것과 '피디랑 사이좋게 노노 주고받고 있다'는 것 뿐이다. 호평 받는 유튜브 클립이 넘쳐나는 시기에 제목도 내용도 없으니 그게 뭔지 난 모른다. 또 여성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걸그룹이 활동하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 여성 아이돌이 SM인지 JYP인지 중소인지 나는 몰랐다. 내가 엔터 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근데 다들 수능 세대 아니야?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화자의 의도 파악 같은 거 안 가르쳐? 말의 맥락을 이렇게 오독할 수 있는 거냐고.)
케이팝에 관심 없는 보통 사람들은 하물며 어떨까? 엔터 쪽 프리랜서인 내가 봐도 모르는 단서를 굳이 찾아다 싸불 좌표를 찍은 덕에 리센느는 일베 묻은 걸그룹이 되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온갖 남초 커뮤에서 암약하던 일베충들이 노노거리며 댓글을 달고 있다. 이게 김현지 PD가 바란 결과라 생각해?

천만에. 이건 당신들이 바란 결과다.
컬트화된 케이팝 팬덤 질서를 열심히 수호하고 당신들의 아이돌이 무균실에 화초처럼 있길 바라는 마음이 리센느란 브랜드에 똥칠을 한 거다. 또 비슷한 시기에 터진 배재고 야구부의 혐오가 제대로 된 경상도 사투리를 기반으로 했다는 지점에서 '-노'체의 제대로 된 사용법 이슈는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86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노윤호 sbn은 <Thank U>에서 '일희일비 않기. 좀 더 강해져야 돼. 웃어 넘길 수 있게.' 라고 하셨다. 또 스윙스 역시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를 묻어버리고 싶으면 관심을 주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알아서 사라진다고.. 소싯적 여기저기 디스를 걸며 모두까기 돈까스였던 시절을 통해 터득한 레슨이겠지.
에휴... 빅나티한테 디스 당한 스윙스처럼 귀찮고 피곤하다. 뭐 그러를 그러세요. 그러고들 사세요, 평생.

그래서 이 혼파망의 원인을 어디부터 찾아 올라가야 할까? 최초로 스마트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의 관뚜껑을 따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 아니면 마크 주커버그? 유튜브를 만든 채드 헐리를 찾아가야 하나? 아니다, 웹의 시대를 연 팀 버너스리부터 족치자. 네가 공유한 기술이 한국에 어떤 지옥도를 그렸는지 님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세요.
5.18과 국가폭력 피해를 연구해 박사가 된 서울시교육감 정근식을 보니 역사 교육이란 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중요한 건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지금의 내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할지 자문하는 것이다.
5.18 광주는 왜 고립된 채로 계엄군과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46년이 지난 지금도 왜 호남 사람들은 차별을 당하고, 혐오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출신과 언어를 모두 지워버릴까?
그건 5월에 연합 시위를 하기로 한 서울의 대학 운동권들이 신군부에 겁을 먹고 흩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재 정권은 자국민을 상대로 돌아가며 홀로코스트를 일으키는 걸 아니까, 그 홀로코스트에 휘말리는 건 두려운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신군부와 투쟁하는 길을 택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서서 나간 것이다.
하지만 산 자들은 무얼 했나?
87 이후, 학생운동을 했던 386 세대는 정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 훈장을 들고 본인들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 앞장섰다. 조국, 우상호, 유시민, 송영길 같은 사람들... 이들은 5월 광주를 필요할 때 잠깐 추앙하고 서울에서 자기 욕심에 취해 민주당을 지리멸렬하게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욕하고 찢어졌다 붙었다 다시 찢어진다. 이들의 모럴 라이센싱은 젊은 세대가 민주당을 싫어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이게 이명박과 윤석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국정원을 동원해 인터넷에 독을 풀었고 한 세대를 극우 파시스트로 만들었다. 윤석열은 손바닥에 왕을 적고 내란을 일으켜 전제 군주가 되려고 했다. 그 사이에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호남은 정치, 경제, 역사적으로 소외된 채 방치되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지만, 산 자는 죽은 자의 후손들을 외면했다.
서울 서부지법이 폭도들에 의해 파괴되고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폭도들이 국가대표 선수단에 완장질을 해도 이재명 정부는 이를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토록 바란 내란 청산 역시 미적지근하다. 오히려 이재명은 통합을 이유로 극우 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하기까지 했다.
민주진보 세력 중 누구도 호남의 편에 서지 않고 민주화운동의 상징만 이용해 본인들의 사사로운 이익만 취한 결과,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 사회로 청구된 것이다.
보통은 익명으로 활동하던 반성폭력 활동가 '불'이 얼굴을 드러내고 신상을 드러내 이재명을 지지해 달라고 절박하게 호소한 이유를 영원히 모를 것이다. 박지현 같은 청년이 민주당의 구태를 청산해야 한다고 목놓아 얘기하면 싸불 좌표를 찍는다. 586 세대, 극렬 민주당 지지자들은 아이돌 팬덤이랑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반성폭력 운동을 하던 청년 여성이 신상을 드러낸다는 게 어떤 무게인지 모르면서...
모바일과 인공지능이 디폴트로 자리잡은 시대, 사람들은 관중이 된다. 관중석에 앉아서, 방구석에 앉아서 키보드로 이름을 걸고 뛰는 사람들을 욕한다. 랜선만 있으면 누구나 훌리건이 될 수 있는 시대다. 훌리건들은 환장의 디지털 세상에서 바이러스를 퍼먹고 나쁜 디지몬이 되어 온라인에서 궁극체로 진화한다. 궁극체가 된 극우몬들은 오프라인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실체화되어 사회를 망가뜨린다. <디지몬 어드벤쳐>가 그린 SF 디스토피아가 이런 모습일까?

그럼에도 대부분은 그냥 관중이 되길 택한다. 소속감을 느끼는 팀이 조금씩 다를 뿐.. 이만큼 책임감 없는 세대가 역사상에 있었을까? 내가 정근식만큼 역사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그것까진 모르겠다. 다만 이 어른 없는 시대를 만든 건 IMF 이후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그리고 본인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를 열심히 외면한 기성세대다.
5.18 정신을 헌법에 넣은들 무엇하랴. 사시를 패스하면 무엇하랴. 관습헌법(ㅋㅋ)으로 한국의 수도가 된 서울은 조선의 수도였고, 사대부들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몰리는 것처럼 모두 인서울을 출세의 길로 생각한다.
반면에 지방은 소멸 중이다. 모든 으른(ㅋㅋ)들이 서울 자사고 학생들의 미래만 걱정하지, 호남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혐오를 당하는 광주 학생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역사가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폭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으로 기록했지만, 호남은 46년째 반역향 취급을 받는다. 마치 홍경래의 난 이후 평안도처럼 말이다. (내란 수괴를 배출한 충암고에서 광주 학생들한테 '내란의 요람이라 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선역이든 악역이든 호남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주인공은 언제나 서울이어야 하니까. 서울에서 완장질하는 게 양반의 삶이니까. 양반의 자리에는 판검사, 의사 등의 전문직과 재벌 총수가 있고 무산 계급은 이들의 소작농이 된다. 한강의 소설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한국은 조선과 '작별하지 않는다'.
비겁한 서울 민주당 놈들은 선거 때가 아니면 광주를 외면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80년도 5월 그때랑 늘 한결같이.

왜 가해자들은 늘 당당하게 용서를 요구하고 피해자 전남광주는 대대손손 계속되는 희롱 비난에도 용서만 해야 하는가
46년 동안 지속된 호남혐오에 호남의 어른들도, 아이들도 체념하고 있다. 속이 다 곪아가면서도 이 세상에 무고를 주장하면 더한 백래시가 오는 걸 아니까, 화를 내면 낼수록 무력감만 느껴지니까 차라리 체념하는 것이다.
나는 이 나라가 싫다. 이런 지옥문을 열어버린 이승만이 싫고 지옥의 시스템 속에서 한국인을 놀아나게 한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장강명한테 허가 받고 <한국이 싫어서>를 리메이크하고 싶을 정도로 한국의 좆같음과 씹쓰러움을 온 세계에 알리고 싶다.
"왜 우리를 싫어하나요"...체념부터 배운 전라도 학생들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원과 교사, 학부모들이 지난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원들과 함께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
www.mdilbo.com


그럼에도 광장에 나온 이유는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과 이젠 안녕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구절이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지만, 개발자 출신인 나는 이 구절이 너무 가슴에 꽂혔다. 개발자가 제일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반복'이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수동이라지만, 이 반복되는 시스템 오류를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이재명 정부가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을 청산하길 바란다. 하지만 이 슬픔을 청산하기엔 이자가 너무 크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 역시 나름대로 이 시대가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투쟁 현장에 나간다.
흔히들 민주주의는 수동이라고 한다.
올림픽공원에서, 한국 힙합 씬에서, 트위터에서 백래시를 목도하면서 나는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민주주의는 줄다리기라고. 팽팽한 긴장 속에서 파시즘과 매카시즘은 우리가 줄을 놓는 순간을, 줄에서 힘을 빼는 순간을 기다린다. 파시스트들은 힘이 세고 싸울 줄도 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릉골 강제집행을 막으면서 나는 용역과 주택조합에게서 공대위랑 연대인들이 힘이 빠지는 순간을 노리고 있음을 느꼈다. 내 예상대로 지치고 힘이 빠질 때 용역은 정릉골을 강제로 집행했다. 연대인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마을이 헐리고 세입자들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다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순간 힘을 주고 긴장한 채로 접경 지역을 지키는 군인처럼 살 수는 없다. 우리는 투사가 아니니까... 나도 내 삶 속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은 평범한 시민이다.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줄을 놓지 않을 필요는 있겠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더 이상 영크크는 아니지만 어른이라 할 수도 없다. 김현지 감독이 품었던 희망과 달리, 나는 이 나라에 어른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 없는 시대, 파시즘과 줄다리기를 우리의 승리로 완전히 끝내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 교육만능주의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0) | 2026.07.12 |
|---|---|
|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0) | 2026.07.12 |
| 260202 세종호텔 긴급 문화제 발언문 (0) | 2026.02.02 |
| "마왕을 쓰러뜨렸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고" (0) | 2026.01.01 |
| 250307 내란수괴 윤석열 석방 긴급 규탄대회 (1) | 2025.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