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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만능주의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사회가 부도

by 사회가 부도 2026. 7. 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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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유독 학구열이 높다.

(교육이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한다지만) 대학 진학률도 높고 문맹률도 낮다. 하지만 동시에 반지성주의로 인한 사회문제가 빈번히 벌어지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 모든 명제가 참이면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2010년대, 나는 한 기관에서 4대폭력 예방교육 운영 업무를 맡았다. 여기서 4대폭력은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가정폭력 같은 젠더기반폭력을 말한다. 보통은 나이가 있거나 어디서 대표 직함 달거나 하는 사람들이 전문강사 자격을 따는데..

엥????

정신을 차려보니 (당시) 내 또래 영크크 페미니스트들이 젠더를 불문하고 4대폭력 전문강사 자격을 수강하고 있었다. 마치 시대의 사명을 띠고 가부장제로부터 이들을 교화하겠다는 듯이. 특히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이 사명을 강하게 드러냈다. 젠더 권력과 동질성을 이용해 교육을 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1) 그래서 어쩌라고~ 하~나도 안 들리는데~~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나는 회의적이다.

백 번 양보해서 교육의 기회가 부족해서 혐오가 창궐한다 치고, 성평등이나 역사 교육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이 실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수강생이 위와 같이 나오면? 수강생이 교육을 듣는 둥 마는 둥 휴대폰이나 하고 있다면?


교육이나 프로그램 운영을 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교육은 고도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것이다. 때문에 강사와 수강생 모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강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강생이 "어쩔티비?? 1도 안 들리는데~~ 야르~~" 하고 귀를 막으면... 강사 본인만 피곤하고 현타 오는 거다. 지금 이런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나처럼.


효과가 없는 것 같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다. 지금도 교육 활동을 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그게 되는 사람들이기에 '남성들도 교육을 받으면 괜찮은 동료 시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나이브한 희망을 품는 것이다.


사진: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출처: 뉴시스


하지만 이번 배재고 야구부의 호남혐오 사건을 보고도 '얘들이 5.18 광주의 역사에 대해 몰라서 그래... 역사 교육이 부재해서 문제인 거야'라고 하는 반응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악!!!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한 인간을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내는 데 공교육도 사교육도 고등교육도 모두 완벽하게 실패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연구하고 가르친 정근식 교수... 지금의 서울시교육감을 보고도 몰라? 정근식의 역사 공부는 본인의 나르시시즘과 권력욕, 명예욕을 위한 거였다. 역사 교육을 내 나이만큼 한 작자가 지금 광주일고 학생들한테 2차 가해를 저질렀다니까?!?!?!? 서울 자사고 학부모 편 드느라 광주 학생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2) I 참교육 U

에휴...

그렇다고 내가 '교육 같은 거 하등 쓸모없으니 다 때려치웁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반지성주의를 교육만능론으로 해결하려는 게 나이브한 오판이란 것이다. 애초에 교육이란 것도 배우고 싶고 타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것이니까.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자. 여러분은 교육을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앞서 난 교육을 고도화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침 받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나는 널 가르칠 거니, 너는 듣기만 해'라는 수직적인 교육자의 태도는 반지성주의를 더더욱 강화할 뿐이다. 어쩌면 부모나 일선 교사 등,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으른들의 교만한 태도가 '참교육'이란 단어를 오염시킨 게 아닐까?




.. 디씨를 비롯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오염되고 말았지만, 참교육은 전교조의 캐치프레이즈다. 나는 살면서 전교조 소속 교사를 스승으로 둔 적 없다. 그래서 참교육 하면 극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왜곡된 그것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겪은 학창시절의 교육은 체벌과 두발 단속 등,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게 정당했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교조 교사를 만나기 전에 오염된 참교육 밈을 먼저 접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한국 사림들은 교육을 폭력이라 생각하고, 체벌을 겪으며 성장한 밀레니얼 부모들은 뭐만 하면 아동학대라고 학교에 민원을 넣는다. 어쩌면 오염된 참교육이나 교육만능론 역시 '교육 = 폭력'이란 도식 아래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3) 새벽 별 쓰라린 가슴 안고

누군가는 전교조를 욕하고 누군가는 학창 시절에 만났던 전교조 교사를 그리워한다. 또 누군가는 '학창시절에 지혜복 선생님 같은 교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며 연대 발언 중 펑펑 운다. 이들은 진보도 아니고 교육도 감도 없는 보신주의 끝판왕 정근식에 의해 추운 날 연행되기도 했다.




권한이 있지만 책임을 회피하고 사건을 덮는 정근식과 달리, 지혜복은 권한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 학교에 일어난 성폭력을 책임지기 위해 투쟁의 길을 택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참교육이 뭔지 모르고, 사전적인 의미를 보아도 와닿지 않는다. 나는 지금을 '어른 없는 시대'라고 부르니까.

하지만 이 어른 없는 시대, 그는 보신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는 대신 세상을 향해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 증명하기를 택했다. 문득 지난 겨울, 동지들과 함께 행진하며 불렀던 민중가요 <우리는 가지요>가 떠올랐다.

https://youtu.be/wcFSSO5Q5Mg?si=5JYGR_fRPK23jHXx

[kpop/release] 전교조 전국 노래패 연합_우리는 가지요

전교조 전국 노래패 연합의 참교육 노래 보급 두번째 음반입니다.The second album is a true uni...

www.youtube.com


이 노래는 전교조 전국 노래패 연합에서 만들었다. 가사를 같이 보자.


우리는 가지요 그렇게 가지요
너와 나 우리 함께 가지요
새벽 별 쓰라린 가슴 안고
그렇게 우린 걸어 가지요



여기서 화자는 '우리'가 '함께' 간다고 한다. 중요한 건 세번째 마디다. '새벽 별 쓰라린 가슴 안고', 새벽 별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화자는 쓰라린 가슴 안고 걸어가는 걸까?

공공에서 가장 보수적인 학교라는 장소를 떠올려 보면 이유는 어렵지 않다. 정근식들이 넘치는 학교에서 교육자로서 (본질적인 의미의) 참교육을 실천하는 건 쓰라린 가슴 안고 걸어가는 일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이란 수단으로 학생을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 함께 나아가는 게 지혜복 같은 교사의 소명이니까. 비록 그게 새벽 별 쓰라린 가슴 안고 가는 길일지라도 말이다.


마치며

나는 이제 늙크크다. 페미니즘 교육으로 일베충들을 교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냉소적인 아저씨가 되었다. 비혼주의자니까 내 인생에 육아나 양육 같은 건 없을 것이고 (일로 주어지지 않는 이상) 영크크들을 만날 일이 적을 것이다. 대신 늙크크로서 똑바로 살아야겠지. 정신 차리면서... 영크크들은 늙크크들의 삶을 보고 '이런 것까지 배운다고???' 싶을 정도로 넓게 보니까.

누군가의 삶 역시 책이 되고 넓은 의미로 교육이 된다. 학교에 민원 넣고 교사들한테 컴플레인 걸기 전에 스스로 똑바로 살자, 늙크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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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이상하게 나는 코러스 3-4번째 마디에 꽂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다시 만난 세계>의 최애 파트도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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