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를 쫓는 활동에 대한 포스트를 쓰던 도중, 한강 작가가 최근 일어나는 혐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제80년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강 작가는 "혐오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라며 "어떻게 하면 이 혐오의 시대에서 방향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2015년, 20대 초중반의 나는 이 문제의 솔루션을 페미니즘에서 찾았다. 하지만 페미니즘 리부트의 물결보다 반동이 더 컸다. 페미니즘에 한계가 있고 페미니즘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 세대의 반극단주의 운동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메갈리아로부터 촉발된 온라인 여론전은 남초 커뮤니티의 톡식한 인터넷 문화에 경각심을 주었지만, 동시에 TERF라는 새로운 극단주의 세력을 만들었다. 극우적 사상의 유무와 별개로 '-노'체는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다. 여성혐오가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나 비퀴어 남성에게 타격을 주듯, 일베에 오염된 경상 방언은 경상도의 기성세대에게도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극우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특히 이 혐오의 시대와 반동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은 자연스럽게 극우를 막는 남성들에게 향했다.

얼마 전, 나는 KBS <시사기획 창>을 통해 북한의 스마트폰 보급과 한국에서 날리는 대북전단이 의도와 달리 북한 주민들을 위험하게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다큐를 보시라.
https://vod.kbs.co.kr/m/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11-1097&program_id=PS-2026094915-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ion_code=05§ion_sub_code=06§ion_id=11874
[554회] 시사기획 창 - KBS
[삐라와 손전화] 북한은 2013년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엘리트에게만 제한될 거란 예상과 달리 스마트폰은 널리 보급되고, 빠르게 확산했다. 이 변화는 북한의 정보 장벽을 무너뜨리고,
vod.kbs.co.kr
북한의 체제가 생각보다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북한 체제가 안에서 붕괴될 거란 막연한 낙관을 가지고 삐라를 날린다. 마찬가지로 국경 안에서 소리 없는 총성이 이어지는 지금, 스마트폰으로 삐라를 날리는 남성 청년이 있다. 01년생 정치 인플루언서 정민철이다.


Z세대인 정민철은 일베가 창궐하는 교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나 역시 조직 운동을 하면서 학교 안에서 일베나 남초 밈이 얼마나 심각하게 돌고 있는지, 이게 여성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직접 들었다. 하지만 90년대생인 내가 본 것과 01년생인 정민철이 보고 느낀 건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현 세대가 자주 쓰는 플랫폼에서 여론전을 한다. 숏폼과 짤, 댓글로 직접 극우랑 싸우는 등.. 그는 이를 '문화전쟁'이라 하는데, 삐라를 날리는 건 생각보다 꽤 효과적인 전술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삐라로 인민군을 전향시킴으로써 포탄을 아꼈다. 종이 몇 장이 포탄에 들어가는 비용을 세이브한 것이다.
그는 본인의 경험과 활동을 바탕으로 <1020 극우가 온다>라는 책을 출간했고, 이는 청와대 참모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 정민철은 민주 진영에서 스타로 부상했다.

또 내란 정국에 활약한 카운터스 역시 여기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인터뷰에 등장한 카운터스 운영자는 평범한 30대 직장인 남성이다. 카운터스는 극우발 가짜뉴스를 신고하고 극우 세력의 조직도를 그리며 이들의 관계를 분석하는 등 적극적으로 극우 추적 활동을 한다.
이들의 집요한 추적은 가짜뉴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극우 유튜버들에게 타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극우 작전 세력들이 인터넷에 풀어낸 독을 걷어내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2010년대의 청년 페미니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반복한다. 아니, 오히려 이보다 더 열화된 상태로 나타난다. 이들은 민주 정부의 성공을 바라면서 민주당이 아닌 제3의 세력과는 연대 대신 갈라치기를 택한다.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 등이 애꿎은 타깃이 되었다. 이들은 민주당이 아니면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말한다. 이 양극 체제는 한쪽이 깨지면 와르르멘션이 되는 극도의 불안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관악 갑 후보 박민규를 뽑아준 나로서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지역구 의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이 사람이 말이야.. 설입 역세권 오피스텔 세 받으면서 의정 활동을 그딴 식으로 해?!?!?)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내 표를 받은 정근식은 A학교 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을 연행으로 대했다. 때문에 나는 민주당'만' 대안인 세계에서는 다시 내란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민주당이 무능하고 자기 안전이나 이익을 먼저 챙길 때 사람들의 표심은 내란 세력에게 간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 같아 보이기 때문에 오래 이긴 놈한테 표가 가는 것이다.
나는 차마 국민의힘을 찍을 수 없어서, 내 지역구에 진보정당 후보가 없어서 민주당에 표를 주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권자는 그럴 때 국민의힘을 찍는다. 우리는 수구 기회주의자 세력이 설계한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민주당이 줄을 헐겁게 잡거나 놓으면 줄다리기는 내란범들의 승리가 된다.
진보가 한줌인 상황에서 전선을 흑백으로 나누면 민주당이 실각했을 때 더 큰 역풍으로 다가온다. 민주노동당이 쪼개지고 진보정당이 제 힘을 못 쓰고 있는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은 내란이란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빨려들어갔다. 2000년대에 민주 정부가 10년을 이어온 데는 이유 역시 진보정치가 제3지대에서 방파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당 밖의 우군을 넓히는 게 중요한 이유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우려와 달리 진보의 터전이 넓어질수록 극우와의 줄다리기에서 우리가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 지난 탄핵 광장을 떠올려 보시라. 그 한줌들이 얼마나 열심히 뭉쳤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내 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
구도가 흑백으로 나뉘면 사람들 역시 모든 문제를 흑백논리로 접근한다. 특히 논쟁거리는 인터넷이란 0과 1의 공간에 올라가면 맥락이 잘려나간 채 올라간다. 그때부터 모든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민철과 카운터스로 대표되는 정치 스피커들이 가진 한계다.
리센느는 잘못한 것이 없다. 경상 방언의 오염된 용례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경남MBC PD 역시 잘못이 없다. 하지만 뭐든 이분법으로 나누면 머리를 안 써도 되니까, 그럼 정신적으로 편하니까 이들은 쉬운 길을 택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생각을 알고리즘과 AI에 외주 맡긴다고 우리까지 그러면 안 된다.

아니, 솔직히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MBC <무한도전>에서 김제동과 이어주려는 유재석을 보는 송은이가 된다. 제동이 좋은 사람이지... 근데 그거랑 다르지 인마!!!!!
이를 건조하게 말하자면 사리분별을 못하는 것이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능력을 사리분별이라 하는데,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꼭 오답으로 처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틀림을 다름으로, 다름을 틀림으로 판단한다. 내가 보는 세상은 흑백이니까 누군가는 흑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공론장을 열어놓았더니 대화도 토론도 안 하고 돌 던지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보통 이런 사고는 게임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동기화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정민철은 펨코의 아이콘 이준석을 많이 닮았다.
또 전선이 흑백으로 나뉘면 틀린 것도 내 편이란 이유로 쳐낼 수 없다. 김어준이 가짜뉴스의 시조새가 된 것도, 민주당이 안희정, 박원순, 오거돈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도 윤석열이란 히틀러가 나온 배경이 되었다. 아무리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이번에는 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내란 정국에서 내 눈에 들어온 인물이 있다. 진보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준비위원장인 박태훈이다. 윤석열과 광장은 활동 영역과 소속 정당이 달라 만날 수 없었던 청년 활동가들을 알아서 매칭해 주었다. 데이팅 앱으로 치면 슈퍼 부스트라 해야 하나... 광장은 내 바운더리 밖의 청년 활동가들을 급속도로 동지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의 활동에 관심이 생겼다.
일베 폐쇄 서포터즈 단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주변에 이준석을 뽑은 사람과도 친구로 지낸다. 활동가는 주변에 갓반인 친구 셋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는 대체로 낙관적인 느낌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매주 스페이스 방송을 하면 들으러 가니까.

얼마 전 정릉골 강제집행 현장에 있었을 때 그에게 SOS를 요청했다. PD는 NL과 원수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사람이 아니다. 다양한 색깔이 한데 어우러질 때 민주주의가 피어나는 것이다. 정릉골 투쟁도, 마트노조 투쟁도, 세종호텔과 A학교, 택시지부 등... 세상의 부당함에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하는 게 진보의 역할이니까.

한강 작가는 인터뷰에서 만약 이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 것이라면,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를 잘 포착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와 양극화의 시대, 내란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시대,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도모할 수 있을까? 난 가끔 옛날 컨셔스 랩을 들을 때가 있다. 미국의 컨셔스 래퍼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의 가사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I'm a part of the problem, my problem is I'm peaceful. And I believe in the people.
Lupe Fiasco, <Words I Never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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