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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적당한 파시즘을 원하는 게 아닐까?

사회가 부도

by 사회가 부도 2026. 7. 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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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면 욕 먹을 거 아는데... 건조한 사실을 쓸 거였으면 블로그 대신 신문에 기고하지 않았을까?




한 트위터리안이 섹시하다고 올린 자료사진은 1934년도에 나치 독일에서 만들어진 빛의 성당(Lichtdom)이다. (서울대도 그렇고 빛이나 성스러운 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이 건축물은 히틀러의 최측근 건축가인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했으며, 152개의 대공 탐조등을 수직으로 쏘아 올려 밤하늘에 거대한 빛의 기둥을 만들어 웅장한 신전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건물은 나치당의 전당대회 장소로 이용되었으며, 나치 독일의 체제 선전을 위한 미학적 장치로 동원되었다.


1) 감사의 정원과 우파 프로파간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올해 5월 개장된 <감사의 정원>이 있다. 나치 독일의 빛의 성당 열화판 같은 이 조형물은 한국전쟁 당시 희생한 국군과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22개국에게 감사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한다. 최초로 5선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이 빛의 성당의 존재를 알고 계획한 건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이는 보수(혹은 극우) 우파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장치라는 건 두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신문사 앞에서 내리면 한국전쟁 당시 모습과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유엔 회원국들의 희생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입간판들이 줄줄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데 대표적인 사례로 쓰이고 있다. 나는 국가 안보가 중요하다는 의견에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말하자면, 한국전쟁 도중 무고한 민간인들이 진짜 많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냉전의 광기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반동분자로 몰려 학살당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이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전쟁은 평범한 형제의 일상을 뒤흔든다. 주인공 진태는 동생과 아내를 지키기 위해 무공 훈장을 받으려고 적극적으로 전공을 세우지만, 보도연맹 학살 사건으로 아내를 잃는다. 동생 진석의 생사마저 불확실해지자 그는 인민군으로 전향한다. 당시 제작 지원을 약속한 국방부는 강제규 감독에게 내용 수정을 요청했지만, 감독은 국방부의 요청을 거절하고 제작 지원 없이 영화를 제작한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간 결과, <태극기 휘날리며>는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극우 작전 계정들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담아낸 진실들을 잘라낸 채, 한국전쟁의 비극을 이용해 매카시즘을 퍼뜨리고 철 지난 반공(혹은 멸공) 이념을 부추긴다. 건조한 사실을 말한다면 6공화국 헌법은 극우가 추앙하는 이승만을 부정하고 4.19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승만을 추앙하는 거야말로 반헌법인 것이다.)


인터넷은 참 기묘한 공간이다. 모든 것들이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를 만나면 맥락이 왜곡되고 납작해진다. 우리는 웹을 통해 이역만리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의 진실를 알 수 있지만, 동시에 맥락이 잘리는 현상을 이용해 위처럼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 인류의 바람과 달리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발달은 극우화를 부추기고 음모론을 확산시킨다. 이를 이용해 한 세대를 바보로 만든 이명박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다.


2) 나만 아니면 돼




국가번호 82의 나라답게 한국은 유례 없는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 속도에 따른 부작용으로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강남 개발과 수도권 중심주의는 지방소멸을 가속화했고, 87 민주항쟁의 주역들은 스스로 구태가 되기를 택했다. 그 틈을 비집고 대통령이 된 이명박은 586 세대에 대한 반감을 여론 공작으로 확산시켰다. 대통령을 두번이나 탄핵시켰음에도 온라인에서 탄생한 극우 폭도들이 오프라인에서 난동을 부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보수 개신교의 눈치를 보고 기성세대 본인들의 보신을 위해 내린 안전한 선택들이 사회를 점점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은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내 알 바 아니니까.





이쯤에서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인들은 적당한 파시즘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집값과 주식이 오르고 우리 애가 명문대에 가면 누가 산재로 죽든, 누가 내부고발을 했다가 부당해고를 당하든 내 알 바 아니니까. 성소수자가 자살을 하든 그게 내 이익에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면 별로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파시즘에 적당히가 있을 리 있나.


파시즘은 인간의 틀을 극도로 좁히는 이념이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가 빼앗기면 나의 자유와 권리도 머지않아 빼앗긴다. 그게 나치 독일이 인류 역사에 준 교훈이다. 어느날 독재자의 눈에 거슬렸다는 이유로, 옆집 이웃이 나를 밀고해서 죽거나 반신불수로 돌아오는 시대를 겪으면서 시민들은 항쟁의 길을 택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마침내 내 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010년에 래퍼 UMC/UW(현 팟캐스터 유승균)는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놓았더니>라는 곡을 발매했다. 화자는 계속되는 보수 진영의 여론 공작과 불편한 진실을 게임이나 저질 방송 등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며 외면하는 세태를 풍자했다. 옛날 노래라 빻은 지점들이 상당히 많지만, 2010년이나 2026년이나 '내 알 바 아니니까' 사람들은 '계속 착했다'.




하지만 극우 바이러스에 감염된 극우몬들이 현실에서 실체화되고 있다. 이들은 교실에서 일베 밈을 돌려 부르고 여성범죄를 저지른다. 급기야 떼지어 다니며 폭도로 변하자, 어떤 남성 청년들은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누구일까?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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