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를 돌려 관악을 보게 하라는 문장이 있다.
보면 볼수록 시의적절한 문장이 아닌가 싶은데, 이는 시인 정희성이 우리나라 제일의 명문대 서울대학교를 칭송하고 서울대인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길 바라며 지은 시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안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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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1971)
그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이마가 시원한 봉우리
기슭이마다 어린 예지의 서기가
오랜 주라기(朱羅紀)의 지층을 씻어내린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듯이
관악의 이마에 흐르는 보배로운 기름이여
영원한 생명의 터전이여
겨레의 염원으로 기약한 이 날
헤어졌던 이마를 비로소 마주대고
여기 새로 땅을 열어
한 얼의 슬기를 불 밝히니
「진리는 나의 빛」
이 불이 밝히는
오 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온갖 불의와 사악(邪惡)과
어둠의 검은 손이 눈을 가릴 때에도
그 어둠의 정수리를 가르며 빛나던 예지여
역사의 갈피마다 슬기롭던
아 우리 서울대학교
뼈 있는 자의 길을 보아라
뼈 있는 자가 남기는 이념의 단단한 뼈를 보아라
저마다 가슴 깊이 사려둔 이념은
오직 살아 있는 자의 골수에 깃드니
속으로 트이는 이 길을
오 위대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만년 웅비(雄飛)의 새 터전
이 영봉(靈峰)과 저 기슭에 어린 서기(瑞氣)를
가슴에 서리담은 민족의 대학
불처럼 일어서는 세계의 대학
이 충만한 빛기둥을 보아라
온갖 어두움을 가르며
빛이 빛을 따르고
뼈가 뼈를 따르고
산이 산을 불러 일어서니
또한 타오르는 이 길을
영원한 세대의 확고한 길을 보아라
겨레의 뜻으로 기약한 이 날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민족의 위대한 상속자
아 길이 빛날 서울대학교
타오르는 빛의 성전 예 있으니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
이 당시 정희성은 서울대 국문학과 4학년이자 학생 대표였다고 한다. 이 시를 밈으로만 알고 있는 우리 세대는 12.3 내란이란 강을 건넜다. 시인의 바람과 달리 서울대는 내란수괴를 배출한 학교가 되었고, 이후 법정에서 보여준 판검사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서울대를 예전처럼 우러러보지 않는다.
어느 나라든 대학 시험이 있고 대학에 명예와 권위를 준다. 대학은 지성의 요람이고 학문을 공부,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발표한 연구나 이론 등이 사회를 이전보다 나아지게 하는 역할을 하니까.
뿐만 아니라 20세기의 한국 대학생들은 지식과 권위를 가지고 서슬 퍼런 군부독재와 싸웠다. 독재자들은 대학생들이 사상을 공유하고 민중에게 이를 전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감시도 하고 탄압도 했다. 지난 6월 28일, 홍대에서 열린 <남태령> GV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나한테 서울대가 명문대인 이유는 박종철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87 민중항쟁이 끝난 이후 당시의 대학생들은 급속도로 그들을 탄압하던 권력과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민주화 주역이란 훈장을 달고 사회적 책무 대신 개인의 사사로운 권력을 탐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광풍은 이들의 사사로움에 돛을 펼쳐주었다. 자식들에게 학벌을 물려주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고, 부동산을 물려주기 위해 온갖 편법을 다 쓴다.
내가 사는 곳이 지역구인 박민규 민주당 국회의원을 예로 들어보자. 박민규는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는 서초구에서 나왔고, 관악 갑에 출마하기 전까지는 아내와 공동 명의인 서초구 자택에 살았다. 그런데 왜 관악 갑에 출마를 한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서울대입구 역세권 오피스텔 하나가 박민규 의원 일가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 중 박민규 의원의 명의로 된 집만 11채다. 직함이 정치인인 거지 사실상 임대업자인 셈이다. 그러니까 서울대에서 배운 경제학과 행정학으로 부동산 놀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로) 철회되었지만 근로기준법을 일부 수정해 성과급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는 사고는 그의 계급에서 나온 것이리라.
(어?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민주당 공천 받아서 내 표 받아먹고 역세권 오피스텔에서 젊은 사람들 세까지 처받으면서 뭐??!?!? 너부터 집세 지역화폐로 받아라 -_-)
생각해보니 내란수괴 윤석열 역시 서초구에 자가가 있는 부유층이다. 그리고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화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 보세용 ~.~
이를 그대로 보고 자란 세대가 소위 지금의 MZ세대다. 기성세대의 위선과 계급적 사고를 경험하고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란 청년들, 이들은 공정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근데 공정이란 게 대체 뭘까?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해 보았다.
공정(公定)
명사
1. 관청이나 공공 기관에서 정함.
2. 일반 사회의 공론(公論)에 따라 정함.
엥??? 그러니까 누가 정한 대로 해주길 바란다는 건가? (그게 아니야!)
나도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이 뭔지 맥락적으로 이해한다. 1-2번의 설명을 바탕으로 풀어보자면 이들은 '이 사회가 정한 룰을 어기지 말고 당당하게 승부를 내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능력주의와 시험만능주의가 깔려 있다.
나는 이전에 쓴 글에서 "한국은 조선과 '작별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니까 이들은 한국이 조선이었을 적부터 실시된 과거제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들은 농어촌 전형을 혐오하고 수시보다 정시를 높게 취급한다. 수능 성적으로 증명한 게 아니면 음서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들의 눈에 2019년에 불거진 조국 사태는 안 그래도 위선적인 민주당 정권의 민낯을 대대적으로 까발릴 기회인 것이다. (국정원을 동원한 이명박의 여론 공작과 노무현의 자살이란 밑밥이 깔린 상태에서) 이들의 모럴 라이센싱과 나르시시즘, 부정부패와 권력형 성범죄는 잉어킹이 갸라도스로 진화할 만큼의 떡밥을 넉넉히 제공했다. 이들한테 '민주당은 우리 사회가 정한 공정 규범을 어지럽히는 위선적인 좌파'일 뿐이다.
광장의 힘으로 내란수괴를 끌어내린 지금도 이들은 공정 담론을 들고 음모론을 퍼뜨린다. 지난 6월 3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일어난 투표지 부족은 선관위와 정부 여당을 겨눴다. 이들은 삽시간에 폭도로 변해 올림픽공원을 점령하고 아이돌 팬들과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을 검문하는 등 위법적인 일을 스스럼없이 벌였다. 본인들이 교리처럼 믿고 있는 '공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흔히 입사 면접을 보면 공백기에 대한 질문이 들어온다. 경력 공백이 있는데 어떻게 보냈냐고. 나는 이 질문을 바꿔 한국 사회에 던지고 싶다. 이념과 사상의 공백,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21대 대통령 이재명은 실용주의와 경제로 답한다. 언뜻 보면 그는 정치인보다 기업인 같고, 한 가정의 가장처럼 말한다. 지독한 유년 시절의 가난, 자수성가한 정치인, 유능한 행정가란 당사자성을 가지고 "일단 우리나라가 잘 살면 되는 거 아니야?" 란 태도로 정치를 한다.

하지만 우리 아빠가 올드 머니면 뭐하나?
전우원을 보면 부와 권력만큼이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독재자의 손자로 태어나 자유로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금융권에서 일하면서도 그는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원죄와 폭력, 정신질환 속에서 그를 구원한 건 다름아닌 종교였다. 예수 믿고 회개한 전우원은 원죄를 세상 앞에 고백하고, 광주를 찾아 5.18 묘역에 참배를 했다. 또 유니세프에 68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는데, 이 사건은 나로 하여금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또 인공지능 혁명으로 인해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89.4조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엔비디아를 제꼈다. 모두가 삼성과 하이닉스의 주가를 보는 데 여념이 없다. 내 본가 용인에도 하이닉스가 생긴다고 10년 전부터 난리였는데, 반도체 성장세와 동시에 완공되기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가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약칭 반올림)은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피눈물로 만들어진 시민단체다. 모두가 반도체 산업의 호재에 기뻐할 때, 누군가는 그 꿈의 회사에서 일하다 병을 얻고 죽어간다. 반올림 홈페이지를 보면 추모 게시판이 있다.
https://sharps.or.kr/memorial

이번 달(7월)도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이 캘린더에 박혀 있다. 6월에도, 5월에도, 4월에도... 이름 옆에는 고인의 사망 연도가 적혀 있다. 나는 최근에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하나씩 클릭해 보았다.


반도체는 한국의 고부가 산업이고 경쟁력이다. 하지만 우리가 삼성과 하이닉스의 주가를 보고 환호할 때, 반도체 노동자들은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이재명은 이 죽음들을 외면한 채 재벌 총수들을 모아놓고 국민 영웅이라며 90도로 인사했다. 아무리 돈이 마귀라지만, 그 마귀의 무서움을 뼛속까지 안다고 하지만 6-70년대도 아니고 2026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_-

이재명은 돈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이다. 돈에 미친 놈처럼 구는 것도 빈곤의 처절함을 일찍이 겪어봤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는 건 트위터로 종종 밝혀 왔다. 사람의 탈을 쓰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있다고.
하지만 배재고 사태에서도, 올림픽공원의 폭도들 앞에서도 이재명은 나서지 않았다. 그 사이에 마귀들은 극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간 세상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조차도 이 난동에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본인들도 사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이 설계한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친자본, 친기업, 명문대, 법조 카르텔 등을 공유하고 있는 계급 질서가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이 조선과 작별하는 길은 요원하다. 한국은 조선 왕조를 거부했지만 전근대 봉건 질서는 끝끝내 버리지 못했으니까.

"좌우는 상관없는데
위아래는 문제있거든.."
극우 중 하나가 쓰레드에 올린 멘션을 보고 나는 한참을 미친 놈처럼 웃었다. 그러니까 이 사회에 계급이란 게 있단 걸 본인들도 안다는 말이다. 멘션에서 언급한 정청래나 조국 같은 기득권층이 오는 건 부담스럽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했다.
그렇게 따지면 장동혁도 나경원도 기득권층인데, 왜 이들은 유독 민주당 586세대에 거부감을 느끼는 걸까? (물론 이명박이 인터넷에 독을 풀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 이들을 애아빠의 마음으로 둥기둥기 해준다고 그 거부감이 사라질까? 이들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 이들의 니즈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주고 어떤 건 단호하게 혼을 내야 할까?
확실한 건 이 문제의 본질이 고등교육의 부재는 아니란 것이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관악에서 제2의 윤석열이 나올 거고 내란을 일으킬 거라고 빈정거릴 수밖에 없다. 나치 독일과 한국은 닮은 점이 은근히 있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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